카메라 놓지 않는 84세 청년, 강화실버영상제작단 조명진 초대회장….영상에 바치는 열정, 현재진행형

평생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시니어가 있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 초대회장 조명진(84) 씨다. 그의 삶은 단순히 취미로 영상을 촬영해 온 시간이 아니라, 강화지역 노인 영상문화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여정이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는 언제나 조명진 씨가 있었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은 2008년 강화군노인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사진반에서 시작됐다. 이후 2016년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전문 강사를 파견하고 방송 장비를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영상 제작 교육과 활동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오늘의 강화실버영상제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은 영상문화 소외지역인 강화의 어르신들이 직접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목적을 두고 출범했다. 특히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영상 자서전을 제작하고, 역사의 고장 강화의 사라져 가는 마을 풍경과 전통, 생활문화를 다큐멘터리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데 큰 의미를 두었다. 또한 영상 제작을 통한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 문화의 주체가 되고, 노년의 자아실현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그동안 제작단은 ‘세월을 이기는 힘, 오래된 가게'(2016), ‘손돌목 이야기'(2017), ‘해양설화, 백성이 바라는 왕의 덕목'(2018), ‘대룡시장을 아시나요?'(2019), ‘이유 있는 나들이'(2022), ‘완숙씨의 외장하드'(2023), ‘이제야 말하는 당동리의 이별’, ‘아흔의 봄을 그리며(2026)’ 등 수준 높은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 왔다.

이 가운데 ‘대룡시장을 아시나요?’는 서울시장상을 수상했고, ‘완숙씨의 외장하드’는 2023년 시청자미디어대상 최우수상과 2024년 제16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성과의 밑바탕에는 강화실버영상제작단 창립을 이끌고 회원들을 격려하며 활동 기반을 다져 온 조명진 초대회장의 헌신이 있었다.

조명진 씨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1942년 7월 26일 일본에서 재일교포였던 아버지(31세)와 어머니(20세)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해방 이후인 1946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대구로 귀국했다. 네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대구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홀로 서울행을 선택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스무 살에 육군에 입대했고, 군에서 후송반 운전병으로 복무하면서 운전 기술을 익혔다. 군에서 배운 운전은 이후 그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 그는 트럭·버스·개인택시 운전기사로 성실하게 살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부인 한규숙(78, 한지공예가) 씨와는 젊은 나이에 연애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잘 장성해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예순다섯 살에 강화로 귀촌한 그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농사를 지으며 강화군노인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한국화·서예·사진·영상 촬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영상 제작은 그의 삶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새로운 열정이 되었다.

그는 초대회장으로서 회원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강화 곳곳을 누비며 마을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빠르게 사라지는 풍경과 어르신들의 기억을 영상으로 남기겠다는 사명감은 강화실버영상제작단을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영상 동아리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 조명진 씨는 서울 올림픽공원역 인근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강화군노인복지관 실버영상반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강화를 찾는다. 왕복하는 수고로움도 그의 열정을 막지는 못한다.

“좋은 영상은 사람을 남기고, 역사를 남긴다”는 그의 신념처럼, 조명진 씨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강화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84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식지 않는 그의 열정은 후배들에게는 배움의 본보기가 되고, 지역사회에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기는 힘이 되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단순히 영상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지역의 기억을 미래로 이어주는 소중한 기록의 창이다. 그의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망과 영상에 바치는 열정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2023시청자미디어대상 최우수상 ‘완숙씨의 외장하드’ 수상장면. 사진=전성숙
2024제16회서울국제노인영화제 우수상 수상. ‘완숙씨의 외장하드’ 수상장면. 사진=윤석룡
제주여성 영화제 초청작, ‘완숙씨의 외장하드’ 포스터. 사진=제주여성영화제
조명진 작가의 인문화와 서예작품이 걸려있는 작업실. 사진=윤석룡
부인 한규숙(78)씨와 영상 편집 중이다. 사진=윤석룡
2019년강화미디어영상제에 단편영화 ‘백성이 바라는 왕의 덕목’을 출품한 강화실버영상제작단과 조명진 회장(사진 좌측). 사진=강화실버영상제작단
강화실버영상제작단 활동 모습(사진 우측 두 번째가 조명진 초대회장). 사진=윤석룡
‘세월을 이기는 힘, 교동사진관 김두호 사장’. 사진=강화실버영상제작단
‘세월을 이기는 힘, 대를 잇는 새우잡이, 한대경 선장’.  사진=강화실버영상제작단
‘세월을 이기는 힘, 안병덕 서해페리호 선장’. 사진=강화실버영상제작단

 

강화실버영상단 개강식에서 인사말하는 강화군노인복지관 윤심 관장. 사진=윤석룡
강화실버영상제작단원과 식사를 하며 작품 제작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윤석룡
윤석룡 기자
윤석룡 기자
교육학박사/ 전 한국지방교육정책학회 회장/ 전 경기도초중등다문화교육연구회 회장/ 전 마송중앙초 교장/ 강화군노인복지관 실버영상기자단 단장/ 강화시니어신문기자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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