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숙 작, ‘억새풀 사이로’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도 불행하다고 말하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의 얼굴에는 오히려 평온한 미소가 머물기도 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

인생은 고통스럽다고 쉽게 말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만의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어쩌면 행복은 바로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우정, 친밀함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 걱정과 분노, 질투와 외로움 같은 감정을 조금씩 다스리며 내 안에 평화를 키워가는 것.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평생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듯 행복 또한 특별한 목적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길과 모퉁이마다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인생의 끝에 이르면 누구나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와 마음을 나누었으며, 얼마나 따뜻하게 살았는지가 더 소중할 것이다.

창밖을 바라본다.

비가 내린 다음 날, 비탈진 언덕배기에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머지않아 저 잎새들도 낙엽이 되어 떨어지겠지. 그러나 떨어진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떠나는 계절에도 깊은 정서가 남는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커피 향을 음미하고, 한 장 또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지난 삶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런 작은 시간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진정한 행복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성을 어둡게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평화와 자비,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강화의 들녘에 황금빛 물결이 서서히 사라져 갈 무렵이면, 하늘에서는 또 다른 가을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한순간 방향을 바꾸며 날아오르는 청둥오리들의 군무.

그 아름다운 장면과 함께 또 한 해의 가을이 온다.

떠나는 것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계절.

나는 이 가을을 사랑한다.

이 가을에는 우리 사랑하자.

서로의 아픔을 조금 이해하고, 외로움을 조금 감싸주며,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하면서 살아가자.

행복은 어쩌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바라보는 하늘에,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주 앉은 한 사람의 미소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 순간에

행복은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 깊어간다.

우리의 마음에도

따뜻한 행복 하나

가만히 내려앉았으면 좋겠다.

유인숙 작, ‘사인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