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얼마나 만족할 줄 아느냐에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삶의 온도는 거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하여 달려왔다.
복잡하고 숨 가쁜 시대를 위태로울 만큼 가냘프게 건너오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은 갖지 못했다. 정체성이나 영적인 가치 같은 것들은 늘 삶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어쩌면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인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살아오는 동안 마음을 끝없이 짓누르던 것들의 실체 또한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스스로 옳다고 믿어온 아집들……
우리는 그것들을 삶의 이유처럼 끌어안고 살아왔지만 결국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것도 바로 그것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된다.
삶은 더 많이 소유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온통 물질적인 가치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시대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삶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빠름을 추구하면서 여유를 잃고 편리를 얻으면서 따뜻함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채워가지만 정작 마음은 점점 비어만 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인생의 애환도 결국에는 시간 속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연륜이 쌓인 만큼 인간다운 성숙함까지 함께 깊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생각의 폭과,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스며드는 허무함이 가슴 시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한정된 시간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더 이상 궁상과 후회 속에 머무를 시간은 없다. 남겨진 삶의 여백이 생각보다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조금 더 겸손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진지하게 마주하는 삶이 결국에는 인생의 품격이라는 것을.
명작소설 ‘어린왕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행복이란 거창한 완성의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속에도 이미 행복은 자라고 있다.
삶이란 원래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