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장’ 장무공 황형 장군 탄신 567주년 기념제 거행

조선 전기의 명장 장무공 황형 장군의 충의를 기리고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기념제가 강화도 현지에서 엄숙하게 열렸다.

황영주 종중 회장을 비롯한 종중 관계자 80여 명은 지난 4월 17일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에서 ‘장무공 황형 장군 탄신 567주년 기념제’를 거행했다. 강화군의 행사 보조금 지원으로 마련된 이번 기념제에는 박용철 강화군수와 한승희 강화군의회 의장, 한연희 강화군수 후보 등 지역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선조의 정신을 기렸다.

행사는 전통 제례 절차에 따라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한 장무공의 생애와 공적을 되새겼다. 황형 장군은 임진왜란보다 82년 앞선 1510년(중종 5년), 제포(창원)·부산포(부산)·염포(울산) 왜인들이 일으킨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평정해 국가 안정을 이끌었고, 함경도 절도사 재임 시절에는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국방 강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공조판서를 지내며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특히 황형 장군은 퇴임 후 고향 강화로 돌아와 대규모 식목을 장려하며 소나무를 널리 심었다. 이 소나무들은 훗날 임진왜란 당시 병기와 병선을 제작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어 장군의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전해진다.

종중 측은 “선조의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강화군 관계자는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문화 행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장무공 황형장군 탄신제 장면. 사진=황인엽
제567주년 장무공 황형장군 탄신제 현수막. 사진=황인엽
황형장군을 모신 묘역 전경. 강화일반 산업단지 주변. 사진=황인엽
장무사 안내문. 사진=황인엽

[장무사 안내문]

이 곳은 장무공 황형장군께서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는 30여년간을 남서북 국경을 침략하는 왜군과 여진족들을 남정북벌로서 국가를 보위하신후 공조판서를 역임하신바 있는 공의 위패를 장무사에 배향한 곳이다.

공께서는 서기1459년에 탄생하셨으며 서기1520년 향년 62세에 천수를 다하셨다. 부음에 접하신 중종임금께서는 크게 슬퍼하시면서 시호를 장무로 추증하시고 연미정 전지역과 많은 전답외에 3만여평의 산지를 사패지로 하사하시면서 예장토록 하셨으며 장무사에는 불천지위신위를 배향하고 후손으로 하여금 제례를 거행하도록 하셨으므로 4만여 후손들은 매년 음10월 1일 자정에 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장무사 좌측위는 공의 묘소이며 우측위는 증 병조판서이신 공의 부모묘소다.

공께서는 서기1480년 춘추21세에 무과와 진원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신후 춘추27세에는 무과중시에서도 거듭 장원으로 합격하시고 절충장군으로 혜산진 병마절제사에 제수되셨다. 그 후 표확장군에 제수되시고 회령부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셨으며 서기1510년 중종 5년에 왜군이 경상도 삼포지역을 함락하는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공께서는 경상좌도 방어사로 제수되시어 왜란을 평정하신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시고 정헌대부 오위도총부 도총관겸 지훈련원사로 승차하셨다.

그후 서기1514년 서북방의 국경을 침략하는 여진족이 있었으니 평안도 병마절도사와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셨다. 공께서는 이들을 격퇴하므로서 남서북의 국경을 두 번씩이나 수호하신바 있어 조선조명장록에 추대되셨으며 문무를 겸전하신 그 웅재무략은 일세의 무종으로 추앙되셨다. 말년에는 연미정에 낙향하셔서 소나무를 심게하여 70년후 서기1592년 왜군이 침략한 임진왜란때 병선용재로 크게 쓰인바 있으며 그후 1597년 왜군이 재침한 정유재란때는 선조임금께서 연미정에 오셨을때 성책과 주택건축용으로도 쓰인바 있어 세인들은 공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였다. 이와 같이 유비무환에도 대비하신바 있는 성웅장무공황형장군이시다.

창원(회산) 황씨 장무공파 종회

황인엽 기자
황인엽 기자
전 농협대학 명예교수/ 전 강화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전 강화농협 조합장/ 강화농촌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사회복지사/ 강화시니어신문 기자/ 강화실버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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