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인다이닝: 모두의 식탁’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출연 배우들. 사진=김인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무대 위에 풀어내는 배우들. 사진=김인실

어르신들의 삶과 꿈을 무대에 담다

2026년 10월 30일 오후 2시 30분, 강화군노인복지관 신관 4층 강당에서 연극 ‘파인다이닝: 모두의 식탁’이 관객들의 기대와 호응 속에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어르신들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사랑, 여성의 삶, 노년의 현실과 꿈 등 인생의 희로애락을 무대 위에 풀어낸 작품이다. ‘한평생을 차려놓아도 우리는 아직 허기지다’라는 부제처럼 평생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살아온 어르신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꿈을 펼쳐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무대에는 극단 ‘풀무’ 단원이자 강화군노인복지관 회원인 고영희, 김도이, 김영희, 김정자, 김정희, 왕영분, 이효선, 장호선, 전성숙, 한인숙 씨 등 10명의 배우가 출연해 각자의 삶에 녹아 있는 이야기를 진솔한 연기로 선보였다.

노년의 현실부터 가족과 여성의 삶까지… 관객과 공감 나눠

공연은 단순한 삶의 회고를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대중교통 이용 장면에서는 신체 기능 저하로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의 현실을 보여줬다. 승객의 불편을 이유로 노인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운전기사와 이를 용기 있게 대변하는 시민의 모습은 노인의 이동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했다.

자녀 교육을 소재로 한 장면에서는 공부만을 강조했던 엄마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자녀의 대화를 통해 부모의 기대와 자녀의 삶 사이에서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었다.

시집살이의 애환을 담은 연기도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친정에서는 귀한 딸이었지만 시댁에서는 정성껏 만든 음식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의 서러움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드러났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재능을 펼치겠다며 시집 출판을 선언한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겠다는 용기 있는 다짐이었다.

출산과 육아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드레스 입기를 동경하는 여성의 이야기도 무대에 올랐다. 이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온 여성들에게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활동을 누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스물여섯 번의 이사를 경험한 배우의 이야기는 삶의 무게와 내려놓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마지막 이사에는 이삿짐을 꾸릴 필요가 없는 곳으로 숟가락 하나만 들고 떠나겠다는 대사는 삶의 마지막 여정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게 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의미를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남편의 외도에 분노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 배려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한때 순수하고 소박했던 여성이 세월 속에서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던 삶의 이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의 가치를 전했다.

살아생전 장례식이라니… 웃음 속에 담긴 삶의 메시지

관객들의 웃음과 박수를 이끌어낸 장면은 살아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배우의 이야기였다.

조의금을 미리 받아 여행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도 살아 있을 때 만나고 싶다는 재치 있는 대사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과는 앞으로 외면하겠다는 솔직한 표현도 웃음을 더했다.

이어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국화 한 송이씩을 나눠주며 장례식 장면을 연출했다. 처음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보였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라는 의미의 상징적인 꽃으로 다가왔다.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남은 인생, 남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나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살아갈래요!”  사진=김인실

 한우 미역국과 김밥으로 차린 생일 식탁… 모두의 새로운 출발

공연의 마지막은 특별한 생일 식탁으로 장식됐다.

배우들은 다시 태어남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한우 소고기 미역국과 김밥을 준비하고 관객 모두에게 대접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은 자리였다.

평생 가족과 이웃을 위해 밥상을 차려왔던 어르신들이 이날만큼은 자신과 관객 모두를 위한 식탁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공연의 주제가 더욱 깊은 울림으로 전달됐다.

‘한평생을 차려놓아도 우리는 아직 허기지다’라는 말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루지 못한 꿈, 자신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소망 등 평생을 살아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허기를 의미한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메뉴를 직접 선택하고,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며, 새로운 꿈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이번 공연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이번 무대는 노년을 인생의 끝자락이 아닌 또 다른 출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나이 때문에 포기했던 꿈을 다시 펼치고,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을 살려 행복한 여생을 만들어가자는 희망을 전했다.

앞으로 이어질 ‘파인다이닝: 모두의 식탁’ 후편에는 각자의 꿈과 개성이 담긴 접시들이 놓이고, 행복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가득 차려지기를 기대하게 한다.

한편, 이번 공연은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개방극장이 주최하고 강화군노인복지관이 주관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야기한 어르신 배우들과 이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 관객들이 함께 차린 이날의 식탁은 단순한 연극 공연을 넘어, 노년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복을 함께 그려보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노년을 인생의 끝자락이 아닌 또 다른 출발선으로 바라보게 한 배우들의 열연.  사진=김인실
옥구슬 같이 낭낭한 음성으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는 배우의 낭송.  사진=김인실

옥구슬 같이 낭낭한 음성으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는 배우의 낭송. 사진=김인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배우들.  사진=김인실
연극 장면에 몰입하여 열연하고 있는 배우의 표정이 처연하다.  사진=김인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음식 드릴 생각 참 잘 했쥬?” 극단에서 제공한 음식을 드시며 연극을 감상하는 관객들.  사진=김인실 
연극 감상에 몰입하고 있는 인문학반 어르신들.  사진=김인실 
출연한 배우를 격려하는 인문학반 학우들과 친지들.  사진=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