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농부는 어디로 갔을까?”…가을들판 홀로 거두는 콤바인 기사의 ‘넋두리’

황금빛 벼는 잠시 후 콤바인에 의해 신속히 추수된다. 사진=윤석룡

강화와 김포들판은 벼추수가 한창이다. 누렇게 황금빛 벼가 넘실대던 들판은 하루 지나면 빈 들판으로 변한다.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없고 노인들만 있다. 가을 들판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농부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한참 오래됐다.

언제 모내기가 시작됐는지, 벼베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 대의 콤바인에 의해 순식간에 끝나는 것이 요즘의 벼농사다.

옛날처럼 벼를 추수하는 논에 새참을 나르는 아낙네와 목이 빠지게 새참을 기다리는 농부들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논뚝에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던 농부들의 모습도 더는 찾아 볼 수 없다.

탈곡한 벼는 트럭 위 마대자루에 옮긴다. 사진=윤석룡

10월 9일 오후 강화읍 갑곶리. 기자는 한 콤바인 기사가 콤바인으로 벼를 추수한 후 트럭 위의 대형 마대자루로 옮기는 작업을 신속하게 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콤바인이 20분 남짓 왔다갔다 하면서 3000평이 넘는 논의 벼를 베고 탈곡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잠시 콤바인 운행을 멈추고 체인에 걸린 볏줄기를 연신 쇠갈쿠리로 끄집어내고 있는 고용석(70, 통진읍 도사리) 기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고용석 기사는 의외로 혼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하는 콤바인 기사 고용석(70, 통진읍 도사리) 씨. 사진=윤석룡
콤바인 체인에 걸린 볏줄기를 꼬챙이로 끄집어낸다. 사진=윤석룡

문: 어르신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몇 마디 여쭤 봐도 될까요?
답: 누구세요?

문: 저는 강화시니어신문 기자입니다. 어르신이 콤바인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신기해서 몇 가지 여쭤 보려고요! 어르신이 콤바인을 운전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답: 내가 이 콤바인을 구입한 것이 2014년 가을부터이니까 꼭 10년 됐습니다.

문: 콤바인을 얼마에 사셨나요?
답: 그 당시 농협에서 연 10%로 대출 받아 1억5000만원에 샀습니다.

문: 대출 이자가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답: 너무 비싸지요. 농민들이 봉이라니까요.

문: 콤바인 가격이 지금은 어느 정도 될까요?
답: 아마 지금은 2억2000만원 이상 줘야 살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문: 하루에 보통 몇 평이나 추수를 하시나요?
답: 하루 평균 1만5000평은 추수합니다. 보통사람이 손에 낫을 들고 벼를 베면 300평 정도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내가 벼를 벨 때는 하루 600평은 했지요.

문: 콤바인이 사람보다 50배 이상의 역할을 하는 셈이군요.
답: 아니요! 벼베는 것과 벼를 털어서 자루에 담는 것까지 다 하고 볏짚까지 다 처리하니까 200명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봐야지요.

문: 보통 벼를 추수하시면 수수료는 얼마나 받으시나요?
답: 벼를 추수하고 건조까지 해서 논 주인에게 전해 주는데 1평당 600원씩 받습니다.

문. 하루에 1만 5천평을 추수하시면 수입이 많으시겠네요?
답. 그렇지도 않아요. 수치상으로는 꽤 큰돈을 버는 것 같지만 콤바인 수리비와 유류비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문: 콤바인 수리비가 많이 드나요?
답: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힘들어요. 한번 수리 들어가면 보통 1500만원씩 수리비가 나와요.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수리센터에 들어갑니다. 내 콤바인이 일본제 ‘얀마르’인데 부속품이 전부 일본에서 오니까 수리비가 만만치 않아요. 정비업체와 일본회사만 돈을 버는 거지요. 그나마 내가 웬만한 고장은 고치니까 수리비가 덜 들어가는 편이예요.

문: 하루에 유류비는 얼마나 드나요?
답: 일정하지는 않지만 하루에 보통 40만~50만원 정도 드는 것 같네요.

문: 정미소는 직접 운영하시나요?
답: 정미소까지 하면 좋은데 시설비가 10억 이상 들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아직 못하고 다른 정미소에 맡깁니다.

문: 콤바인을 운행하시는 기간은 1년에 얼마나 되나요?
답: 콤바인으로 벼를 추수하는 기간이 1년에 20일 정도밖에 안돼요. 나머지 기간은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니까 비싼 장비를 놀리는 기간이 너무 길죠.

문: 콤바인을 1년에 20일 밖에 운행을 못하시는 것이 안타깝네요. 혹시 남쪽 지방부터 쭉 훑어서 위로 올라오시면서 작업할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양봉하는 분들 처럼요.
답: 남쪽지방에도 콤바인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 지방 일은 그 지방 사람들이 합니다.

문: 어르신은 주로 어느 지역에서 콤바인 일을 하시나요?
답: 내가 일하는 곳은 김포와 강화지역인데 며칠 전부터 강화읍 대산리에서 일했고, 내일부터는 통진읍에서 일할 예정입니다. 저는 김포와 강화 6개 읍면에서 주로 일합니다.

문: 1년 내내 벼농사를 짓는 동남아 같은 나라로 진출하실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답: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네요. 내가 좀 젊다면 어떨지 몰라도 자신이 없어요. 그런 건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진출해서 기계농을 한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지요?
답: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농촌에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정책을 세워야 해요. 국회의원들이 밥그릇 싸움이나 하지 말고.

문: 바쁘신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일만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답: 감사합니다.

강화에서 친환경 무농약 벼농사를 하고 있는 한모(67, 강화읍 갑곶리)씨는 “농약비, 비료비, 벼이앙기 사용료, 콤바인 사용료, 벼 건조료, 정미료 등을 제외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차라리 공장이나 심부름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200만원 이상 받는데 농사일은 100만원 벌이도 안된다”면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니까 버릴 수 없어 농사를 하는데 내가 이 농사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던가? 곡물을 심고 거두는 일이 제대로 되어야 백성의 삶이 풍요롭고, 국민의 생이 안정되어야 국가가 잘 다스려지므로 그만큼 농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리라.

지구촌이 이상기후 속에서 미국, 중국의 곡창지대가 폭풍과 폭우로 크게 훼손돼 식량 중요성이 다시금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농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한데 이들이 은퇴한 후 농촌을 물려받을 청년들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청년농 육성정책이나 영농승계 정책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청년농이 정착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 수립과 영농승계 컨설팅교육 강화, 영농조합법인 설립요건 완화, 영농증여세 과세특례 한도 확대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젊은이들이 좁은 우리나라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해외로 진출해 대규모 기계영농업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볏잎. 사료로 활용한다. 사진=윤석룡
볏잎은 며칠 간 말려서 비닐로 포장한다. 소 사료로 쓰기 위해서 이다. 사진=윤석룡
볏잎을 파쇄해 논에 뿌리면 철새들도 먹고 땅힘을 키우는 퇴비가 된다. 사진=윤석룡
콤바인 작업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대형 트랙터에 실어서 옮긴다. 사진=윤석룡

 

윤석룡 기자
윤석룡 기자
교육학박사/ 전 한국지방교육정책학회 회장/ 전 경기도다문화교육연구회 회장/ 강화군노인복지관 실버영상기자단 단장/ 강화시니어신문기자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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